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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슬픈 공원: 봄맞이 산책후기 - 최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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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서러움과 배고픔의 겨울은 왜 그리도
길게 느껴졌었는지, 해동의 봄을 기다리던 가난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해 호르헤 뉴~델리
국내공항 앞 `PARQUE DE LA MEMORIA(기억의 공원)’ 봄나들이 산책을 다녀왔다. 50여 해
앞만 보고 달려온 타국에서의 삶을 뒤돌아보는, 추억으로 기억될만한 봄나들이였다 라고
생각을 한다. PARQUE DE LA MEMORIA 공원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정시절 절망
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죽임을 당했거나 실종된 정치인, 시민,
그리고 거리행진을 하던 10대 나이의 남 여 중학생, 수많은 희생자들의 숭고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슬픈 공원이다. 그곳 공원에는 콘돌 작전 당시의 참상을 상세하게 기록한 서적들과
영상기록을 관람할 수 있는 역사기록관이 있고, 작은 벽돌 크기의 이름표를 만들어 쌓은
어둡고 무거운 비화(秘話) 애화(哀話)아날로그 유령 탑이 낮은 강 언덕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슬프고 먹먹했던 5·18 민주화 당시를 떠올리며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하지만,
지평선만이 아득히 바라보이는 `RIO DE LA PLATA’ 이색적인 황토 빛 강물과 넓고 푸른
잔디언덕의 청정수 시원함을 이곳 기억의 공원에서 느껴볼 수 있다. 머리에 흰 스카프를 두른
`PLAZA DE MAYO(오월 광장)’ 협회 할머니들이 군정시절 실종되었거나, 강압으로 입양시킨
잃어버린 손녀손주 찾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정부의 후원으로 PARQUE DE LA MEMORIA
기억의 공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평일에도 출입이 가능하며, 관심 있는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가랑비를 동반한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을씨년스럽던 `산타 로사’ 궂은 날씨가 스쳐간
주말이었다. 맑고 푸른 하늘, 바람도 잠잠할 수가 없었는지 RIO DE LA PLATA 강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싫지 않게 얼굴을 스쳐 지난다. 물이 마르면 거대한 사막으로도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넓은 강물 위에 부서지는 눈부신 아침햇살,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파릇파릇
새잎이 돋아나는 공원 잔디밭 사잇길을 걷다 보면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보라색 오랑캐 꽃,
어릴 적 고향 산동네 묵은 채마 밭 촌스럽게 피었던 샛노란 민들레, 눈에 익은 반가운 봄맞이
꽃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젊은 열정의 회전목마 그 시절 추억에 머물러 산책길을 따라가면 잎이
넓고 푸른 서양 장미, 일찍이 봄을 재촉하였을 매화공원에 이른다. 반가움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무수히 꽃 무리를 이룬 열대의 매화는 그윽한 사랑도 황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매화는 늙은 등걸이 용의 몸뚱어리처럼 뒤틀려 올라간 성긴 가지에 뛰엄뛰엄 몇 개씩
피어야 황홀해 지는, 품위 있는 매화다” 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문득 떠올라서 그렇게 낮 설게
느껴졌지 싶다.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봄 기운은 그나마
일말의 답답함을 환기시켜주었다. 집을 나설 때에는 홀연 단신이었던 마음은 어느새 산책
나온 많은 사람들 무리수에 끼어들었다. 한 사람 화내는 이 없는, 온화한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서로 사진기에
인물을 담아주느라 화기애애하다. 그룹을 지어 산책을 나온 하늘색, 검정색 교복차림
학생들의 밝고 싱그러운 표정은 그늘진 마음을 비울 만큼 평화로웠다.

그렇게 넓은 공원의 풍물구경을 끝낼 무렵이면 어느덧 PARQUE DE LA MEMORIA는 해가
기울고 예외 없이 무거운 어둠이 흩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빠져나간 하루의 눈부심을
뒤로하고 한적한 숲길, 긴 휴식의자에 등을 기대며 PARQUE DE LA MEMORIA 기억의 공원
의미를 유추해본다. 부패와 탄압 그리고 투쟁과 평화, 정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을 한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내란, 투쟁의 진의는 평화를 위한 희생만이 아니었다. 인간 본능적 야욕
우월감 증오심에서 비롯되는 투쟁이었으며,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수많은 인명을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아~, 어찌 잊으리오. 해방의 감격이 가시기도 전 치러야 했던
6·25 내전 보훈의 달을.” 공산화 통치목적으로 북한은 무력도발 남침을 감행 한반도가

잿더미로 변하는 동족살상의 비극, 지하에서 허덕이는 가난을 겪게 했다. 근본이
불량청소년은 아니었는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이 전쟁의 후유증인 가난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응어리진 빈곤과 서러움은 평생을 괴롭힌다. 젊어서는 견디기 어려운 감추고
살아온 위험한 고독이었는데, 따듯한 사랑을 피부로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는 자식에게
아내에게 너그럽지 못하였으니 이 또한 안타깝고 슬프고 미안하다.

민주화 희생의 메시지, `PARQUE DE LA MEMORIA’ 슬픈 기억의 공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면서 조용히 손을 모아 명복을 빈다. “기억의 공원에 잠든 영혼들이여,
그대들이 흘린 고귀한 혈흔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202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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