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美談과 감동] 아름다운 선행

작성자 정보

  • CAEMCA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글 : 최태진

담장이 낮은 우리 집 정원에는 맛과 향이 다른 다섯 그루의 과일나무가 있다. 그 중에
한 구루가 매실나무인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기온이 온화한 까닥 인지 한겨울에 분홍색 겹꽃이 핀다. 열매를 맺으려면 꽃가루를 옮겨 주는 벌이 찾아와 주어야만 가능한데, 추운 겨울에 과연 벌이 찾아오려나 걱정을 한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꿀벌들이 찾아온다. 신기하기도 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잊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 배나무, 유자와 자두나무에 봄맞이 꽃이 필 즈음이면 꿀벌들의 일터가 우리 집 정원이다. 꽃 향은 벌을 불러 들이고, 벌들은 꽃에서 먹이를 얻는 `상우 상생’의 동반 품앗이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놓고 들여다 보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자연이 섭리 상우 상생은 그 누구를 위함인 동시에 내 자신을 위해서도 자연스럽게 흐르고, 흘러가야만 살만한 사회일 터인데, 현대인은 너그러운 마음의 여유를 너무나 많이 잊고 지나친다. 선행을 보면서도 무표정한 태도를 보이는 심술궂은 인연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 그리움, 따라잡을 수 없는 욕망에서 도망치고 싶어질 때, 따듯한 마음의 선행을 목격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참 마음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상가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단독주택을 구입해 이사를 오기 전까지 아내는 시내 트리부날 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문을 열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긴 했지만, 심심찮게 단골손님이 많아 20여 해 짭짤한 수익까지 챙기는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아내를 도울 방법은 편의점 문 여는 시간과 저녁 문닫는 시간을 동행해 주는 일이었다. 한겨울 새벽출근을 할 때면 은근슬쩍 꾀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대신해줄 사람은 없었다. 매일 아침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어두컴컴한 길목, 문방구점 앞 처마 밑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 곁을 지난다. 많은 행인이 지나치는 곳이었지만, 얇은 담요 한 장으로 노숙을 하는 노인에게 관심을 두고 바라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노인은 잠자리를 정리하고 직장으로 출근하듯 가까운 산 니콜라스 공원으로 옮겨간다. 햇빛이 잘 드는 펜치에는 벌써부터 같은 처지의 독고노인들이 모여 앉아있다. 귀퉁이가 해진 두툼한 책이 늘 손에 들려 있는, 문방구점 앞에서 노숙을 하는 금발수염 덥수룩한 `文宰’ 노인에게는 오래 전 유럽으로 이주한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소식이 단절 되였고, 아예 도움을 청할 수 없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서 지급하는 무의탁 연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선거철이면 염려스런 선거공약을 `갑론을박’ 토론을 하지만, 정작 자신들에게 다가올 내일의 걱정은 염두에 두지 않는, 비록 의복은 남루하지만 예의 바르고 동정을 구하기 위해 딱한 얼굴을 지어 보이는 일이 없는 분들이었다.

오래 전에 편의점을 그만 두었지만, 지금도 찬바람이 일고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겨울이면 금발수염이 덥수룩한 문재 독고노인 생각이 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선행’, 노숙자 노인에게 온정을 베풀던 체구도 작았던 한국아가씨 따듯한 마음을 기억한다. 행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늦은 시간, 편의점 문을 닫을 무렵이면 어김 없이 샌드위치와 따끈한 인스턴트 야채 죽을 사러 오는 이웃 옷소매 가게 한국아가씨를 만난다. 처음에는 퇴근길 출출한 시장기를 가시기 위함이리라 여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조금 전 편의점에서 구입한 샌드위치와 따끈한 야채 죽을 문방구점 앞 독고노인에게 건네 주면서, 한참 동안을 머물러 이야기를 주고 받는 한국아가씨를 만나보게 되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적은 수입의 일부를 들여 자선을 베푸는 아가씨, 선행을 하면서도 쑥스러워 하는, 이웃 옷소매상 아가씨의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행이기에 더욱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일나무와 꿀벌들의 상우 상생을 기억한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고’. 강박관념으로 야박해진 현시대를 꾸짖은 선인들의 격언이 생각난다. 아가씨의 선행은 눈길마저도 외면하던 노숙자 금발독고노인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나에게 불어 넣어 주었고, 편한 인사와 부담 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 친근한 관계로 이어졌다. “불안 욕심, 고가의 사치나 얼굴 화장은 수단일 뿐, 내면은 텅 빈 마른 박일수도 있다는” 문재 노숙자 금발노인의 고정관념을 들을 때면 어둠을 달리는 자동차 전조등에 비친, 야광 화살표 표지판 같은 해맑음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웃 옷 소매상 한국아가씨가 샌드위치와 따듯한 인스턴트 야채 죽을 사기 위해 다녀가고 나면 아내의 편의점도 문을 닫는다. 문방구점 앞에는 진작부터 금발노인이 와서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사뭇 친숙해진 발걸음으로 노숙자 독고노인 곁을 지난다.
“오늘 밤도 편히 쉬세요”
노인의 문안 인사마저도 예사롭지 않다.
“예, 고맙습니다”
공손히 답례를 하면서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본다. 몹쓸 전염병에라도 걸린 환자노인으로 대하며 몇 발치 피해가던 지난 일이 부끄럽다. 짐짓 죄스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오늘 밤도 편히 쉬기를 바라는 금발 노숙자노인의 문안인사, 이웃 옷소매상 한국아가씨 따듯한 마음씨의 아름다운 선행은 무거운 마음까지 헹궈주어 흰 빨래를 바라보는 개운함, 기분이 참 좋은 귀가길 이었다.

2025-08-08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