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서울의 달 (글: 최태진)
작성자 정보
- CAEMCA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42 조회
- 목록
본문
손을 내밀면 닿을 것만 같은 밝고 둥근 달이 눈높이에 떠있다. 이따금 가냘픈 풀벌레 지새우는 울음이 들려올 뿐, 바람 한 점 없는 달밤은 고요했다. 서양달력에는 음력이 표시되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눈 깜빡 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난 음력 보름달이 아닌 가 싶다. 지난 날 섬광을 그으며 하늘무대를 누비던 별똥별, 보석처럼 반짝이던 은하계가 달빛에 숨어드는 고요한 밤이 지금 내 곁에 있다.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안락함을 포기해야만 했던 이민반세기, 오늘 밤은 잃어버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그 시절 그 추억의 흔적을 메모해 보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잠 못 이루는 귀뚜라미 벗삼아 뜰 안 벤치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많이 있다. 따듯한 아버지이고 싶었는데, 남부럽지 않은 남편이 되어주고 싶었었는데, 등짐은 가벼운데 심지에 불꽃이 일 듯 마음의 짐들이 꼬리를 잊는다. 모두가 다 내가 부족한 탓, 환경 탓이라며 위안을 삼으려니 불쑥 어릴 적 혼잣말이 떠오른다. 아홉 살 때이었을 으로 기억을 한다. 달빛 차가운 밤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왜 다복한 집안 아이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할 가난하고 외로운 현실을 원망했었다.
눈을 감으면 침묵하고 있던 과거의 희비 사건들이 눈에 보인다. 바위가 물길을 막기라도 하면 굽이굽이 돌아서 강물이 흐르듯 지나온 눈물겨운 삶의 발자취가 보이고, 연을 맺은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힘겨운 고독한 삶의 흔적은 세월이 빚은 연민을 가미한, 외인 인출이 불가한 본인만의 적금통장이 아닐 가 싶다.
사람이 살면서 뒤돌아 볼만한 외로운 추억이 있다면 그것은 꿈꾸게 하는 용기이며 의지일 것이다. 누구나 꿈 많은 젊음의 20대를 기억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보고 싶은 시절을 꼽으라면 나는 이민을 떠나오기 전까지 거주하던 충무로 4가의 추억을 일 순위에 둘 것 같다. 처음으로 대한극장에서 상영된 70m 대형 스크린화면 수입영화 닥터 지바고는 당시엔 대단한 화제였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던 7·4 남북공동성명, 그때의 역사현장을 목격한 감격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남북공동성명이 체결 성사된 화답으로 북한 측 평화사절단이 서울을 방문했었다. 서울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퇴계로를 지나는 북한 대표단 행렬을 뜨겁게 열렬히 환영했다.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북한 대표단의 밝은 표정은 인상적이었고, 상기된 감정이 북받쳐 처절한 눈물을 흘리는 실향민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개 병원과 오토바이상회가 많았던 퇴계로, 오후 5시경이면 오토바이상회에 들러 장기와 바둑을 두시던 분들이 생각난다. 유창한 서울말을 구사하던 독일 태생의 칼 핫치만씨, 시 민회관 춘향전 극중 이몽룡 역으로도 출연을 했었던 칼 핫치만씨는 장기 두기 실력에도 고수였다.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닌다 하여 할리 김사장님, 민사장님, 함경도 서씨, 동일오토바이 윤사장님, 그리고 친구 석태와 김군 정군, 정든 그리운 얼굴들이다. 그리고 대한극장 건너편 단골 지하다방, 달덩이 같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모닝커피를 드실래요 칼피스로 하실래요?” 친절하고 간드러진 충무로 다방아가씨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어렵사리 이민 수속절차가 마무리 되어 입을 옷가지와 간단한 필수품인 2개의 이민가방을 준비, 출국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오직 나 하나만을 믿고 기약 없는 이민 길을 따라 나서는 아내, 영문도 모르고 품에 안기는 한 살 두 살이 된 어린아이들, 다가올 생면부지 낮 선 이국 땅에서 감당해야 할 불안초조는 며칠째 잠을 설치게 했다. 지닌 것이라고는 없는 무연고 무모한 모험을 자처한 마음 불안, 고국을 떠나는 찹찹한 마음이라도 달래볼 생각에 아내와 남산 야간산책을 나섰다. 정상인 남산타워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야에 펼쳐진 무심한 서울의 야경은 야속할 만큼 아름답고 찬란했다. 아~, 아름다운 서울의 밤, 언제 다시 서울의 달밤 산책길을 걸어볼 기회가 있으려나,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조여온다. 아내와 함께 거닐던 반세기 전 남산 산책로, 그날 밤에도 밝고 둥근 보름달이 눈높이에 떠있었다. 지구 밖으로 떠나는 불안을 긍정의 힘으로 부추기던 애향의 서울의 달, 향수마니아 이방인은 몽환적 그리움으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2026-05-26
잠 못 이루는 귀뚜라미 벗삼아 뜰 안 벤치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많이 있다. 따듯한 아버지이고 싶었는데, 남부럽지 않은 남편이 되어주고 싶었었는데, 등짐은 가벼운데 심지에 불꽃이 일 듯 마음의 짐들이 꼬리를 잊는다. 모두가 다 내가 부족한 탓, 환경 탓이라며 위안을 삼으려니 불쑥 어릴 적 혼잣말이 떠오른다. 아홉 살 때이었을 으로 기억을 한다. 달빛 차가운 밤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왜 다복한 집안 아이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할 가난하고 외로운 현실을 원망했었다.
눈을 감으면 침묵하고 있던 과거의 희비 사건들이 눈에 보인다. 바위가 물길을 막기라도 하면 굽이굽이 돌아서 강물이 흐르듯 지나온 눈물겨운 삶의 발자취가 보이고, 연을 맺은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힘겨운 고독한 삶의 흔적은 세월이 빚은 연민을 가미한, 외인 인출이 불가한 본인만의 적금통장이 아닐 가 싶다.
사람이 살면서 뒤돌아 볼만한 외로운 추억이 있다면 그것은 꿈꾸게 하는 용기이며 의지일 것이다. 누구나 꿈 많은 젊음의 20대를 기억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보고 싶은 시절을 꼽으라면 나는 이민을 떠나오기 전까지 거주하던 충무로 4가의 추억을 일 순위에 둘 것 같다. 처음으로 대한극장에서 상영된 70m 대형 스크린화면 수입영화 닥터 지바고는 당시엔 대단한 화제였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던 7·4 남북공동성명, 그때의 역사현장을 목격한 감격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남북공동성명이 체결 성사된 화답으로 북한 측 평화사절단이 서울을 방문했었다. 서울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퇴계로를 지나는 북한 대표단 행렬을 뜨겁게 열렬히 환영했다.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북한 대표단의 밝은 표정은 인상적이었고, 상기된 감정이 북받쳐 처절한 눈물을 흘리는 실향민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개 병원과 오토바이상회가 많았던 퇴계로, 오후 5시경이면 오토바이상회에 들러 장기와 바둑을 두시던 분들이 생각난다. 유창한 서울말을 구사하던 독일 태생의 칼 핫치만씨, 시 민회관 춘향전 극중 이몽룡 역으로도 출연을 했었던 칼 핫치만씨는 장기 두기 실력에도 고수였다.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닌다 하여 할리 김사장님, 민사장님, 함경도 서씨, 동일오토바이 윤사장님, 그리고 친구 석태와 김군 정군, 정든 그리운 얼굴들이다. 그리고 대한극장 건너편 단골 지하다방, 달덩이 같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모닝커피를 드실래요 칼피스로 하실래요?” 친절하고 간드러진 충무로 다방아가씨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어렵사리 이민 수속절차가 마무리 되어 입을 옷가지와 간단한 필수품인 2개의 이민가방을 준비, 출국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오직 나 하나만을 믿고 기약 없는 이민 길을 따라 나서는 아내, 영문도 모르고 품에 안기는 한 살 두 살이 된 어린아이들, 다가올 생면부지 낮 선 이국 땅에서 감당해야 할 불안초조는 며칠째 잠을 설치게 했다. 지닌 것이라고는 없는 무연고 무모한 모험을 자처한 마음 불안, 고국을 떠나는 찹찹한 마음이라도 달래볼 생각에 아내와 남산 야간산책을 나섰다. 정상인 남산타워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야에 펼쳐진 무심한 서울의 야경은 야속할 만큼 아름답고 찬란했다. 아~, 아름다운 서울의 밤, 언제 다시 서울의 달밤 산책길을 걸어볼 기회가 있으려나,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조여온다. 아내와 함께 거닐던 반세기 전 남산 산책로, 그날 밤에도 밝고 둥근 보름달이 눈높이에 떠있었다. 지구 밖으로 떠나는 불안을 긍정의 힘으로 부추기던 애향의 서울의 달, 향수마니아 이방인은 몽환적 그리움으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2026-05-26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