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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요즘 패션은 촌스럽고, 낡은 것을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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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코트, 낡은 청바지, 구겨진 가방…‘완벽함’에 지친 패션계


프라다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의 싱글 브레스티드 앤티크 트윌·하운드투스 체크 코트. 할머니의 다락방에서 막 꺼내왔다고 해도 믿을만한 모습이다. 프라다 홈페이지프라다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의 싱글 브레스티드 앤티크 트윌·하운드투스 체크 코트. 할머니의 다락방에서 막 꺼내왔다고 해도 믿을만한 모습이다.


얼룩이 묻으면 세탁부터 해야 했고, 청바지가 해지면 버리거나 수선했다. 구겨진 셔츠는 다림질했고, 낡은 가방은 새것으로 바꿨다. 그런데 요즘 패션계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래 입은 것처럼 바랜 옷을 만들고, 일부러 구김을 남기고, 원단이 마모된 듯한 효과를 내고, 가방은 구겨진 상태로 든다. 모델의 머리도 막 잠에서 깬 듯 흐트러뜨린다. 한물간 것으로 여겨졌던 스키니진과 Y2K 스타일도 다시 런웨이에 등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올해 이런 현상을 아예 ‘완벽함에 대한 반발(anti-perfect backlash)’이라고 분석했다. 구겨진 가방, ‘침대에서 막 나온 듯한’ 머리와 흐트러진 메이크업 등 이른바 ‘메시 시크(messy chic)’가 단정하게 잘 차려입은 모습을 대체하는 하나의 미학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다시 촌스럽고 낡고 조금은 흐트러진 것에 끌리는 걸까.


새 옷인데 오래 입은 것처럼 보인다. 프라다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의 싱글 브레스티드 앤티크 트윌·하운드투스 체크 코트다. 프라다는 앤티크 가공을 한 트윌과 자수로 표현한 하운드투스 체크를 겹쳐 독특한 표면을 만들었다. 프라다 홈페이지새 옷인데 오래 입은 것처럼 보인다. 프라다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의 싱글 브레스티드 앤티크 트윌·하운드투스 체크 코트다. 프라다는 앤티크 가공을 한 트윌과 자수로 표현한 하운드투스 체크를 겹쳐 독특한 표면을 만들었다.


새 옷인데 오래된 옷처럼


올해 초 공개된 프라다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이 흐름을 보여주는 옷들이 등장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싱글 브레스티드 앤티크드 트윌·하운드투스 체크 코트다. 이름부터 ‘앤티크드(antiqued)’다. 새 옷이지만 표면은 오래 입어 세월이 밴 듯한 느낌을 준다.


프라다는 이 옷을 단순히 빈티지풍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기억의 층처럼 표면이 겹쳐진다”며 앤티크 가공한 트윌과 자수로 표현한 하운드투스 체크가 만나도록 했다고 전한다. 핵심은 새 옷을 낡아 보이게 만드는 데 있다. 옷은 더 이상 공장에서 갓 나온 듯 완벽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입은 듯한 표면, 매끈하지 않은 질감, 조금은 어긋난 듯한 디테일이 옷에 이야기를 부여한다.


이는 최근 패션계에서 나타나는 ‘더러운 패션(dirty fashion)’과도 맞닿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프라다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을 비롯해 여러 브랜드에서 얼룩, 주름, 마모된 듯한 소재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을 짚었다. 단순히 옷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매끈한 ‘조용한 럭셔리’와 ‘클린 걸’ 미학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다.


‘더티코어’보다 큰 흐름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이 현상을 국내외 SNS에서는 ‘더티 코어(Dirty Core)’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표현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너무 잘 차려입지 않는 것이다.


완벽하게 말린 머리 대신 헝클어진 머리, 매끈한 피부 표현 대신 번진 듯한 화장, 각 잡힌 가방 대신 구겨진 가방, 새 옷 같은 데님 대신 오래 입은 듯한 데님. 한때는 관리하지 못한 흔적으로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일부러 남긴 개성의 흔적이 되고 있다.


일명 ‘꾸안꾸’ 스타일과 비슷해 보이지만 결은 조금 다르다. 꾸안꾸가 ‘공들였지만 공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최근의 흐트러진 미학은 아예 약간의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1990년대 모델로 데뷔해 패션 트렌드를 이끈 배우 클로에 셰비니는 최근 패션지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Y2K와 인디 슬리즈(indie sleaze) 재유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인디 슬리즈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 초반에 유행한 흐트러진 스타일을 일컫는다. 그는 Y2K의 재유행을 단순한 복고라기보다 당시의 자유롭고 약간은 엉망인 듯한 분위기가 다시 받아들여지는 현상으로 바라봤다.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이상화된 완벽한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흐트러진 머리 같은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이 반갑고 신선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근 패션의 변화를 단순히 ‘못생겨 보이고 싶다’라고 해석하기보다는 ‘항상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의무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패션은 원래 자기표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SNS 시대에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표현’마저 하나의 규격이 됐다. 자연스러운 셀카조차 더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연출하고, ‘꾸안꾸’마저 잘 꾸며야 하는 시대다. 그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이 ‘의도적인 흐트러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9일 열린 뉴욕 패션위크의 랄프 로렌 2027 봄·여름 컬렉션에서 모델이 1990년대 유행했던 ‘더티진’을 연상시키는 바지를 입고 런웨이를 걷고 있다. AP|연합

지난달 9일 열린 뉴욕 패션위크의 랄프 로렌 2027 봄·여름 컬렉션에서 모델이 1990년대 유행했던 ‘더티진’을 연상시키는 바지를 입고 런웨이를 걷고 있다.


‘낡음’은 다음 시즌에도 계속될까


2027 봄·여름 패션 시즌의 첫 무대인 뉴욕 패션위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지난 9일 열린 랄프 로렌 컬렉션에서는 옷을 오래 입어 자연스럽게 낡은 듯한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아이템이 등장했다. 패션 전문지 하퍼스 바자는 ‘앤티크하고 날씨에 바랜 듯한(antiqued and weathered)’ 느낌을 냈다고 설명했다. 풀스커트에는 일부러 구김을 넣었고, 손으로 그린 듯한 디테일과 번아웃 기법을 사용했으며, 스-팽글은 일부러 반짝임을 죽였다. 데님과 낡은 듯한 고급 실크 재킷을 조합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랄프 로렌이 이번 컬렉션을 설명하면서 독창성, 개성, 캐릭터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옷을 입는 방식이 ‘진정으로 개인적인 스타일’을 만드는 자유와 재미를 누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즉, 낡아 보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완벽하게 새것처럼 보이는 옷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AI가 완벽해질수록, 사람의 흔적이 좋아진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이 단순히 옷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AI는 이제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완벽한 얼굴과 몸, 완벽한 배경, 완벽한 옷을 만들어낸다. SNS에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미지가 넘쳐난다. 누구나 흠 하나 없는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구김과 마모, 오래 입어 생긴 듯한 주름, 낡은 데님처럼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며 남긴 흔적을 연상시키는 것이 오히려 매력적인 패션이 된다.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최근의 ‘낡고 지저분한’ 패션을 깨끗하고 획일적인 미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옷이 얼마나 더럽거나 낡았느냐가 아니라, 완벽하게 관리된 모습만이 가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역설도 있다. 일부러 구겨진 옷을 입고, 일부러 낡아 보이는 가방을 들고, 일부러 흐트러진 머리를 만드는 것 역시 결국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낡은 것과 낡아 보이도록 디자인된 것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지금 패션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새것이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좋은 것. 얼룩과 구김, 마모와 낡음은 한때 없애야 할 결함이었다. 지금은 그것을 오히려 개성과 시간의 흔적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다음 유행은 ‘더 잘 입는 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 못 입어도 괜찮고, 조금 낡아 보여도 괜찮고, 남들과 똑같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완벽하게 새것 같은 옷보다, 내가 입고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옷에 마음이 가는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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