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기업의 시장 통제로 불평등 악화···국가가 노동자 보호해야”···훙호펑·베나나브·슈탑·임운택·강민형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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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사회학회’ 세계 석학 초청…디지털·그린 전환의 미래를 논하다
비판사회학회 국제학술대회 ‘디지털-그린 전환과 사회의 미래’(4~5일 개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의 디지털화와 그린 전환의 가속화”가 한국 사회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최근 <제국의 충돌: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를 출간한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를 쓴 아론 베나나브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도 참석했다. 필립 슈탑 훔볼트대 교수는 독일에서 주목받는 사회학자다. 경향신문은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계명대 교수), 강민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을 포함한 5인 좌담을 지난 4일 진행했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플랫폼 기업’ ‘디지털 감시와 노동자 압박’ ‘미국의 사회주의 부상’ ‘미·중 갈등과 세계 경제’ ‘파시즘과 민주주의’ 같은 거시 문제를 압축적으로 논의했다. 사회는 임 회장이, 통·번역은 강 위원이 맡았다. 다음은 좌담 전문이다.

‘디지털-그린 전환과 사회의 미래’ 학회 참석 학자들이 지난 4일 경향신문사에서 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아론 베나나브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 필립 슈탑 훔볼트대 교수,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 강민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한수빈 기자
디지털 기술이 노동 양극화 원인?
약화된 노동조합 교섭력이 문제
플랫폼 시장에 적절한 규제 없어
노동의 조건이 전보다 악화된 것
임운택=디지털·그린 전환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슈탑=EU에서는 디지털·그린 전환에 따라 산업 정책이 되살아납니다. EU는 주로 미국에 본사를 둔 빅테크 기업, 대형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고, 디지털 경제에서 유럽 기업들의 입지를 다지려고 디지털 시장법, 디지털 서비스법, 데이터 법, 디지털 거버넌스 법, 플랫폼 노동 지침 등을 제정했습니다. 그린 전환을 두고는 수력이나 배터리 산업 투자를 진행합니다. 녹색 철강 산업 성장을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철강재에 세금을 부과하는 규제도 마련했습니다. 유럽 특히 독일의 경우, 디지털·그린 전환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긱(gig) 경제의 부상에 따른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가 존재합니다. 플랫폼 경제의 노동 집약적 부문을 담당하는 단시간 노동자들은 급속히 늘어납니다. 다만 전체 노동력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는 인구학적 요인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수적으로 가장 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은퇴하고 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예컨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노동시간이 급격히 단축되고 고용도 감소하지만 베이비 붐 세대의 노동시장 퇴장에 따라 이러한 영향이 상쇄되는 상황입니다.
임운택=미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베나나브=미국은 아마존과 구글 같은 강력한 빅테크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 기업이 부상하면서 노동 불안정화, 노동시장 양극화와 같은 많은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명확해진 건 디지털 기술 그 자체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경기 침체의 심화나 노동조합의 교섭력 감소가 이 문제를 악화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기술 변화 자체가 아니라 플랫폼 노동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 결여 때문에 노동조건이 악화한 겁니다. 우버의 경우, 캘리포니아에서의 AB·5 법(Assembly Bill 5, 주문형 노동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독립계약자 노동자로 재분류함) 통과로 우버 운전자 법적 지위를 노동자로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사측은 이 결정을 뒤집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다시 우버 운전자들을 노동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바이든 정부는 행정 규칙 개정으로 법원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필연적으로 낳는다고 주장하는 기술 결정론을 반박하는 많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임운택=미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베나나브=미국은 아마존과 구글 같은 강력한 빅테크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 기업이 부상하면서 노동 불안정화, 노동시장 양극화와 같은 많은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명확해진 건 디지털 기술 그 자체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경기 침체의 심화나 노동조합의 교섭력 감소가 이 문제를 악화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기술 변화 자체가 아니라 플랫폼 노동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 결여 때문에 노동조건이 악화한 겁니다. 우버의 경우, 캘리포니아에서의 AB·5 법(Assembly Bill 5, 주문형 노동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독립계약자 노동자로 재분류함) 통과로 우버 운전자 법적 지위를 노동자로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사측은 이 결정을 뒤집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다시 우버 운전자들을 노동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바이든 정부는 행정 규칙 개정으로 법원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필연적으로 낳는다고 주장하는 기술 결정론을 반박하는 많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미 지적 재산권 따라야 하는 중국
알리바바 등에 더 강력한 통제
바이든 정보는 중국 구실 삼아
그간 통과 어려운 법안·정책 제정
임운택=디지털·그린 전환은 동아시아에서도 전개됩니다. 중국의 디지털 전환과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은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훙호펑 선생은 중국의 ‘내생적 혁신(endogenous innovation)’ 시스템의 부재를 강조하시는데요.

홍호펑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4일 진행한 경향신문 특별 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훙호펑=중국 정부는 2000년대부터 자국 기술 고도화를 위해 노력했죠. 대규모 공적 자금을 조성해 연구 개발에 투자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기술 고도화에 많은 자원을 투여했지만, 중국 기업들은 원하는 결과를 낳지 못했지요. 예를 들면, 중국은 수적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 출원에 성공했지만, 90% 이상의 특허가 5년 이후에는 갱신되지도, 사용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한국, 대만 등 후발 산업 국가들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과거 수입 기술에 의존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지적 재산권 보호 체제 형성 이후에는 미국 경제에 의존적인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적 재산권을 준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내생적인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자체 기술을 보유한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반면, 중국의 경우 새로운 지적 재산권의 글로벌 표준을 준수하지 않아도 될 만큼 (즉 미국에 대항할) 강력한 정치적인 힘을 가졌죠. 자생적인 기술 개발보다는 기술 도용을 선택했고 이는 기술 혁신에 장애가 됐습니다. 첨단 반도체 산업을 두고도 중국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한국, 대만, 유럽 여러 국가 같은 미국 동맹국에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정치경제 제도는 기술 혁신과 고도화를 적절히 뒷받침하지 못했습니다.
임운택=중국의 빅테크 디지털 기업들은 세계적인 선도 업체로 부상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지요?
훙호펑=중국에도 알리바바와 텐센트와 같은 민간 부문 빅테크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사업 아이디어는 미국 아마존이나 유튜브에서 유래하지만 이들 기업이 자체 기술 혁신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많은 빅테크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규제 사각지대의 덕을 봅니다. 예컨대, 미국의 자율 주행차 개발 실험에서는 막대한 책임 문제가 존재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문제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에서도 그러한데요. 미국 정부가 개인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죠.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은 이런 제약에서 자유롭습니다. 한편 빅테크 기업들이 성장하자 중국 정부는 이들 기업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리바바의 핀테크 기술 개발에 중국 공산당은 매우 불편한 심기를 보였습니다.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위주의 정부와 산업을 혁신하려는 민간 기업 간 이익이 상충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중국에서는 (산업 혁신에 대한) 민간 노력보다는 정부 통제가 강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민형=베나나브 선생께서는 발표문에서 리쇼어링(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제조 기업들이 다시 국내로 생산을 이전하는 정책)을 비롯한 미국의 새로운 산업 정책과 국가 역할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한국 독자들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반도체 과학법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합니다. 이런 미국의 산업 정책이 성공을 거둘 것으로 생각하는지요?
베나나브=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혹자는 트럼프가 강력한 반중국 정책을 전개할 때 민주당이 집권하면 이런 경향이 다소 약화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죠. 바이든은 오히려 더 강력한 반중국 정책을 추진합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중국을 구실로 그동안 통과시키기 어려운 법안이나 정책을 제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론 베나나브 시라큐스대학교 교수가 4일 경향신문 특별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훙호펑=중국은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옹호합니다. 중국은 생산의 아웃소싱 혹은 역외생산, 자유무역 같은 가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오히려 미국이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거나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해 분노합니다(웃음). 유럽 연합의 녹색 탄소세의 경우,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고 있지요. 흥미롭게도 2022년 2월 시진핑과 푸틴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한 공동 성명엔 녹색 탄소세에 대한 반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시진핑의 관심사였지요.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자유무역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지금은 중국이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한 미국과 유럽이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합니다.
슈탑=흥미로운 언급입니다. 유럽연합에서 주도권을 쥔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 지향 경제이며 자유무역 의존도가 높습니다. 미·중 경쟁 속에서 독일, 한국과 같은 수출 경제 국가들이 중간에 끼인 상태가 됐습니다.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오늘(4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을 만날 예정인데, 회담 쟁점 중 하나는 중국 해운회사 코스코의 독일 함부르크 항만 지분 참여를 승인할 것인가입니다. 독일 처지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출 시장이 없다는 사실을 중국은 잘 압니다. 심지어 독일이 최후 소비 시장으로서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독일의 대중 수출 의존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베나나브=이것은 독일과 한국 경제 모두에 매우 실질적인 위험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속해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취하고 중국 경제 성장이 계속 둔화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 창출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재 세계 경제가 새로운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강민형=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 기간 한국의 동반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중국 자본재 및 중간재 수출 확대와 더불어 한국 대기업들의 세계 시장, 특히 미국 시장의 성공 때문입니다. 이 시기 국가 산업 정책보다는 대기업의 연구 개발 역량 강화나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선도 기업과의 협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슈탑=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국가의 개입은 다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서도 알 수 있죠. 대부분의 유럽 국가 정부는 가계 에너지 비용을 보조하는 등 국가 스스로 자유 시장 경제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베나나브=프랑스 정부는 주요 에너지 기업을 이미 국유화하고 전보다 낮은 가격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슈탑=향후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세계화가 지속하려면 장기적인 산업 정책보다는 단기적인 적응 정책이 국가의 경제 정책 수립에서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임운택=과거 미국·EU·일본의 삼각 경쟁과 달리, 오늘날 미·중 간 경쟁의 격화는 새로운 산업 정책, 무역 정책, 투자 패턴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990년대 세계 경제와 비교할 때 오늘날 세계 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임운택 비판사회학회 회장이 4일 경향신문 특별 좌담 중 다른 참가 학자 발언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베나나브=좋은 지적입니다.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를 고려할 때 오늘날 미국의 리쇼어링 같은 산업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 무역은 줄어들진 않았지만 더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GDP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지요. 우리는 아직 세계 경제의 상호 의존성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진 않습니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건 중국 경제가 앞으로도 경기 침체를 경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민간 기업은 투자하지 않으려 하죠. 투자 부족의 문제는 장기 투자의 부재를 더욱 심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산업 정책에 회의적입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가 밝혔듯이, 미국의 반도체 업체가 리쇼어링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대만 기업의 발언은 정치적일 수도 있습니다만 사실에 가까운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기도 하고요. 사실 1980년대 이래 미국 정부가 다양한 산업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어느 하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산업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치적 위험 부담이 따르는 투자를 함께 결정하는 지배 엘리트의 통합이 매우 중요한데 미국은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인) 솔린드라의 실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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