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2세 변겨레, 연방정부 문화부 차관보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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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2세 변겨레 씨가 최근 연방정부 문화부 차관보로 임명되면서, 앞으로 한인 사회와 아르헨티나 정부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상인연합회 는 지난 3월 초, 변겨레 씨와 만나 정계에 진출하게 된 계기와 과정 등에 대해 들었다.
1.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 달라
누가 이름을 물으면 항상 안또니오 겨레라고 대답을 한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뜻을 담은 겨레라는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내 나이는 28세이며, 변호사지만 한 번도 변호관련 일을 한 적은 없다. 장남이고 얼(24)과 결(19), 두 남동생이 있다. 평소 해피엔딩 영화를 좋아하고 , 어릴때부터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해서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와 글을 쓰는 것을 사랑한다.
2.정치를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된 계기는?
정치에 몸을 담거나 정치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공직에 들어서는 것은 언제나 내 목표였다. 타인을 위해 봉사할 때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고 느낄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봉사로 변화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품어왔다. 부모님의 독려 덕분에 12살 때부터 배낭여행을 자주해왔다. 15살 때부터는 혼자 여행을 다녔는데, 부모님은 언제나 최소한의 여행경비, 작은 수첩, 볼펜, 그리고 언제나 미션을 하나 주시곤 했다.
15살 무렵에는 500뻬소를 주시면서 산따 끄루스 주 리오가졔고스 행 고속버스에 나를 태우시고는 “주지사와의 인터뷰에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을 말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산따 끄루스 주의 주지사가 누구였는지 아는가? 바로 고 네스또르 끼르츠네르 전 대통령이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주정부청사로 갔지만 인터뷰는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게 좀 이상하기는 했다. 한인 소년이 수첩하나와 배낭을 메고 지구 남단의 도시에서 주지사를 만나겠다고 떼를 쓰는 모습이라니……. 그 사람들은 주지사 대신 관광부장관에게 나를 보냈다. 만약 끼르츠네르 주지사와의 만남이 성사됐다면, 내 정치 인생이 그때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미션과 여행이 언제나 있었고 부모님의 지시는 한결같았다. 하루에 5달러 이하를 써야 할 것, 혼자 여행을 해야 하고 어려운 길과 쉬운 길이 있다면 항상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했다. 이를 지키면서 라틴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를 여행했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에 5달러만 쓴다는 규칙은 거의 지키지 못했다. 볼리비아와 이집트에서는 가능했지만 나머지 국가에서는 어려웠다.
관광명소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피라미드를 방문하는 것과 사막의 베두인족과 하룻밤을 지내는 것 사이에서 베두인족의 삶의 단면을 보는 쪽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세상을 더 풍성하게 보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한번은 모든 서류를 도난당하는 바람에 국경 경찰을 피해 교량 아랫길을 통해 아르헨티나에 밀입국을 해야 했던 적도 있다. 인권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스파이처럼 쿠바를 방문한 일도 있다.
한마디로,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접하는 경험을 하면서 그들의 빈곤을 목격한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조금씩 만들어나갔던 것 같다. 변화를 이뤄내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일은 항상 개선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좀 다른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3.어떻게 공직에 들어서게 되었는가?
그건 이야기가 굉장히 길지만 부모님의 조건 없는 지원과 나에게 기회를 주신 분들, 그리고 한인 사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산타페 주 로사리오 출신이고 18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상경했다. 당시 10년 ,5년, 몇 달, 몇 주 단위로 모든 것을 계획했던 것이 생각난다, 인맥이 없는 이민자의 자식에다 지방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하길 바란다.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PRO와는 2009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비쟈 솔다띠의 한 슈퍼마켓에서 전단지를 돌린 것이 당원으로 처음 한 일이다. 정치계에서 소위 말하는 "cursus honorum"을 한 것인데, 바닥부터 시작하는 일종의 신고식 같은 것이다. 2010년부터는 대학 정치에 뛰어들었고 학생회와 부에노스 대학 법학부 이사회 선거에 여러 번 출마했다. 한번도 3천표 이상 득표하지 못했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 뒤로 한걸음씩 나아갔다. PRO청년조직 문화부 차장으로도 일 해봤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내 이름을 알리고 인맥을 넓혀나갔다.
당원 생활을 하는 동시에 학업에도 정진해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르헨티나 대표로 오스트리아 국제모의 재판대회에도 참가했고, 장학생으로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대학에서 명예졸업상을 받으며 졸업했고, 붕헤&본 재단을 통해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연수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공직에는 가브리엘라 미체띠 부통령의 측근인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의원이 기회를 준 덕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 분이 나에게 첫 기회를 준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현대통령 비서실장인 페르난도 안드레이스와 일했다. 독일에서 돌아왔을 때 마르꼬스 뻬냐 현 수석장관의 아래 있던 훌리에따 에레라의 팀에서 마끄리의 선거캠페인 연설문 작성 담당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 곳에서 정치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여러 후보와 일을 했지만 특히 현 상원의원인 알프레도 앙헬리와 가장 많이 일했다. 2013년 총선이 끝나자 일자리 제의가 여러 개 들어왔는데 그중의 하나가 지금의 상사인 이반 뻬뜨렐라의 제의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것이었는데 아마 내 인생에 일어난 가장 멋진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이반은 내가 아는 가장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이고 나를 지적으로 완성시켜 준 사람이다. 이반은 외국에서 생활을 많이 했는데, 조지타운 대학에서 수학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에다가 마이애미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니 한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내가 쓴 많은 칼럼들은 이반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반과 민주적 문화에 대한 신념에 영감을 얻어 쓰인 것이다.
사실 금년에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런던 정경대와 런던대에 합격을 해서, 런던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CAMBIEMOS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이반 뻬뜨렐라가 연방문화부 차관으로 발탁됐으며, 나도 이반과 계속 함께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나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취업 제의를 거절했다. 한때 일간지 라 나시온에 마르꼬스 뻬냐 수석 장관이 올리보스 관저에서 직원들과 격의 없이 식사를 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당시 점심식사 자리에 뻬냐 장관, 문화부 장관 그리고 뻬뜨렐라 문화부 차관이 있었으며, 나를 문화부 차관보로 발탁하는 것이 결정됐다. 이 사실은 나중에 대통령령으로 관보에 기재됐다.
여기까지 오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멋진 친구들을 얻었고 가족의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았다. 부모님과 함께 내가 지금까지 선택해 왔던 길에 대해 회상하며 웃곤 한다. 부모님은 그 길을 "춥고 배고픈 길"이라고 부르시는데 사실이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부모님,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어진 한인 사회의 지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현실이라는 이름의 칼을 들고 자녀들의 꿈을 들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안 된다는 세상의 소리에 맞서 싸우다가 집에 돌아가서도 가족들까지 나를 반대하는 편에 서있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19살 동생 얼은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동생은 대통령궁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이고 대통령 연설문 작성팀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는 절대 동생의 기를 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꿈을 키우도록 독려했다. 그런 지원은 항상 가족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해야 할 적합한 질문은 "돈을 얼마나 버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도와줄까? 오늘은 어땠니?"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4.현재 맡은 일은? 한인사회와 연관이 있는가?
물론 한인 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항상 우리 자신이 아르헨티나에 한국 국위를 선양하는 대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표시가 나고 이미지를 구축한다고 본다. 특히 우리 2세들은 21세기의 새로운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며, 신선한 아르헨티나판 아메리칸 드림이다. 이는 우리에게 큰 몫의 책임을 지운다.
구체적으로 말해, 나는 문화부 대외관계 협력부 차관보 직을 맡고 있다. 우리 팀은 주지사, 주장관, 시장, 국회의원 등 주정부 기관과 연방 문화부의 관계를 관리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이 부각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지난 3개월간, 60여명 이상의 시장과 50명 이상의 지방 주정부 인사와 접촉했다. 3월부터는 우리가 직접 지방을 순회하면서 다양한 인사들과 만나고 문화 인프라를 직접 눈으로 보기로 예정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국가 현대화와 투명화에 집착하고 있다. 내 사무실은 말 그대로 투명하고 문이 열려있어 안이 훤히 보인다. 유리벽을 통해 내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화부를 인수받았을 때는 많은 적자와 무책임한 지출로 황폐해져 있었다. 심지어 예산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고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친정부 음악계 인사들에게 상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액수를 지불한 기록도 발견했다. 현재는 모든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효율적인 업무 절차를 만들고 있다.
한인 사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내가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 3만 한인 사회 덕분이라는 것은 여러 번 이야기해도 모자람이 없다. 우리 한인사회의 역동성과 활력은 놀랍다. 거의 모든 교민이 빈손으로 도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전문인과 공직자를 양성하면서 아르헨티나 사회와 미래에 점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아직 개선할 여지가 많기는 하지만, 한인 사회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 부모님 세대에 대해 말할 때는 벅차오른다. 모두 함께 이뤄낸 것이 뿌듯하기 때문이다. 차관보로서 매일 수많은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내 서명은 언제나 한국어로 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는 “가장 아르헨티나적인 것은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관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이미 상상 할 수 있다. 21세기의 아르헨티나는 혁신을 부르고 한계를 넘고 현상을 타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민주주의의 산물이며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실히 이해하는 신세대 공직자에 속한다. 같은 시기에 정계에 몸담은 친구들은 모두 35세 이하이며, 많은 친구들이 시장, 국회의원, 차관보 등의 공직에 진출해 있다. 그 중 한명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가장 젊은 시장인 마르띤 셰사다. 우리는 다른 형식에 길들여 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과거보다는 미래 지향적이다. 철학자인 케에르 케고르는 "철학이 인생을 거꾸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다른 문장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5.앞으로의 계획 혹은 꿈이 있다면?
결혼을 해서 자녀 3명을 낳고, 개를 기르고 정원이 있는 집에 살면서, 월말까지 생활비가 버텨주고 가끔 여행을 할 수 있는 소박한 삶을 꿈꾼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치가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앙드레 말로의 명언과 까바피스의 시 “이따까 II“를 추천하며 인터뷰를 마감하고 싶다.
이따까를 마음에 담아두어라
그곳에 가는 것은 너의 운명.
그러나 여행을 서두르지는 말아라.
몇 년이 걸린다면 오히려 좋은 법,
그리고 섬 기슭에 이미 늙어 배를 대는 것,
여정을 통해 너는 이미 성숙하고 풍성해졌다
이따까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따까는 너에게 그토록 아름다운 여행을 하게 했다.
그곳이 없었다면 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
그러나 이미 너에게 줄 것이 없다.
네가 비록 가난해 졌을지라도 이따까는 너를 속이지 않았다.
이렇게, 현명해진 너는, 수많은 경험을 가진 너는,
이제 이따까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오랬 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앙드레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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