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래피티 아티스트 NE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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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함, 스타일, 유머 감각으로 넘치는 NERF 큐브 레터에게 모험과 일화로 가득한 자유로운 길 위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그래피티, 스트리트 아트 스토리.
Q) 재아한인상인연합회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의 기분은?
NERF: 좋았다! 어머니께서 내가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을 무척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시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한 모든 인터뷰 스크랩북을 만드셨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 사회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올 때는 꼭 응한다. 흥미로운 건 부모님께서는 항상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반대해 오셨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돌아오기 전에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더 이상 남의 벽에 공짜로 그림을 그려주지 말아라"였다. 부모님께서는 자비를 들여 모르는 사람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쓸데없는 지출로 생각하셨다. 그러나 내 작품은 거리에 있어야 하고 난 그림을 그릴 연습장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시면 기뻐하시고 "뭐, 그나마 이거라도"라고 생각하신다.
Q) 하지만 그래피티 예술계에서는 알아주는 아티스트 아닌가? 당신은 멋지다!
NERF: 그렇지 않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오고 있을 뿐이다. 할 일을 하는 것이 항상 나에게 더 중요했다. 유행만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는 이 바닥에서 존중받을 수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도 없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하고 있다.
Q) 몇 살 때부터 이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가?
NERF: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래피티 아트는 좀 늦은 19, 20살 때 시작했다. 그래피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15, 16살 때부터 했지만 실제로 뛰어든 것은 늦었다.
Q)부모님께서 처음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들었다.
NERF: 그렇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셨다. 누나처럼 변호사 공부하기를 원하셨다.
Q)처음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장소는 어디인가?
NERF: 우리 집 벽 중 하나다. 벽에 스프레이로 줄을 그리는 작업은 15살부터 했다. 내가 처음 그래피티 작업을 한 벽 중에서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는 건 까바시또의 철도길 벽이었다. 우리는 정치 구호가 적혀있던 공원의 벽에 페인트칠을 한 다음 그래피티 작업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일반 가정집의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현재 내 경우에는 빨레르모에 나만의 벽이 있고, 그 벽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만의 고유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Q)언제나 작품에 서명을 남기는가? "NERF"의 뜻은 무엇인가?
NERF: 그렇다. NERF의 뜻은 프랑스어로 "신경"이다. 프랑스어를 무척 좋아해 "NERF"라는 단어를 찾게 됐다. 내 성격이 무척 예민하기도 하다. 그리고 네 글자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다. 이외에도 프랑스 그래피티 아트를 무척 좋아한다. "NERF"라는 유명한 장난감 브랜드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Q)한국 이름이 있는가?
NERF: 아버지께서는 내 이름을 두산이라고 짓고 싶어 하셨다. 내 성이 백씨라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될 뻔했다. 그러나 집안의 돌림자가 종 이라 최종적으로 백종현이 됐다. 백두산으로 지었다면 읽고 쓰기가 쉬워 굉장히 맘에 들었을 것이다. 백종현이라는 이름은 거의 쓰지 않는다. 대부분 나를 다니 라 부르고, 일부는 NERF, 치노, 빨리또라고 부른다.
Q)당신의 작업은 예술적 움직임으로서 영향력이 있는가?
NERF: 예술적 움직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피티 아트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셔터문에다 보기 흉하게 그린 그림도 그래피티다. 현재 유행중이고 대중이 좋아하는, 꽃, 벌레 등을 붓으로 그린 스트리트 아트 가 있다. 만약 당신이 붓과 팔레트를 들고 길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며 다가오지만, 스프레이를 꺼내면 경찰을 부를 것이다. 나는 스프레이로 그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래피티가 벽에 줄을 긋는 반달리즘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Q) 큐브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NERF: 그래피티 아트에도 전문화 라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이 나서서 거대한 벽이나 기차에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작업을 담당하게 된다. 첫 번째로는, 불법 혹은 합법적으로 할지, 기차에 칠할 것인지 셔터문을 칠할 것인 지 혹은 나처럼 벽을 칠할 것인지 등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한다. 그 다음에는 문자를 쓸지, 나처럼 3D 그림을 그릴지, 사람을 그릴지, 더티 문자를 쓸지 등 수 많은 옵션 중에서 스타일을 정한다. 각 대륙, 국가마다 고유의 스타일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3D 형상을 늘 좋아했다. 벽을 보고 있는데 거기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평면 그림과는 차별화 되는 느낌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식으로 아무도 추구하지 않던 나만의 기초적이고 쉬운 큐브 스타일을 찾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문자도 그리게 됐다. 처음 시작했던 것보다는 훨씬 심플한 작업으로 끝나는 일이 많아졌다. 마치 그래피티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항상 발전할 수 있고, 나 역시 그 과정에 있다. 새로운 요소를 결합하는 것은 재료비 문제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3D 큐브를 그리는 데는 페인트가 많이 소모되지만 문자는 페인트도 시간도 적게 든다. 좋은 시기에는 얼마든지 페인트를 구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다면 가진 것으로 해결하게 된다.
Q) 팀을 이뤄 일을 하는가?
NERF: 그렇다. 작업의 80% 이상을 팀을 이뤄 하고 있다.
Q) 그것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가?
NERF: 그렇다. 많은 경우 관람객들이 서서 구경을 한다. 이 일의 좋은 점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작업하다 보니, 결국에는 모든 작업 과정을 무료로 공유하는 셈이다. 눈 앞에 작품이 있기 때문에 감상을 위해 특별히 장소에 찾아갈 필요가 없다. 때문에 길거리에서 작업하는 것이 좋다. 미술관 같은 곳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감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거리에 좋은 작업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외국의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이곳으로 작업을 하러 온다. 멋진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Q) 지하철 A선의 뿌안 역을 칠하기 위해 호출 받은 적이 있는가?
NERF: 마끄리 시장의 아이디어였다. 완공된 지하철역을 빨리 개통시키는 것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우리를 부른 것이었다. 삼사일 저녁 안에 모든 작업을 마쳐야했는데, 철로에 전기가 흘렀기 때문에 잠도 자지 않고 밤에만 작업을 해야 했다. 밤 열시 반에 운행이 정지되면 전기를 끊었고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개통식 참석은 거부됐다.
Q) 이유가 무엇인가?
NERF: 마끄리 시장이 참석하기 때문이었다. 허가받은 기자들과 정치인들만 개통식에 참석할 수 있었고, 예술가들에게는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그때가 정부와 한 마지막 작업이 됐다. 이후에는 개인적인 작업만 하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들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가 문화계의 일원이라고 믿게 하지만 아니다. 우리를 거리에서도 쫓아내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직접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은 내 작업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내가 하는 작업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이와는 반대되는 시스템을 가진 사람들과는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또한,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움직임인 스트리트 아트 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상황이고, 예술에 대해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최근 가장 순조롭게 나가는 예술 분야가 거리 예술이나 벽화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에 태동되어 성장한 다른 커다란 예술적 움직임은 없다. 스트리트 아트 란 춤추는 사람, 인간 동상 등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예술적 표현을 포함하며, 그래피티 아트도 그 중의 하나다. 이는 마치 예술도구의 하나와 같으며 많은 박물관을 점령하고 있다. 나는 빨라이스 데 글라세,보르헤스 예술센터, 산마르띤 문화센터 등에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그래피티 아트와 스트리트 아트로 사방을 누볐다.
Q)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NERF: 대부분 좋다. 색상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강렬한 색상과 특이함을 사랑한다. 그 어디에서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관람객들이 즐거워한다. 우리는 그 이유로 작업을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물론 첫째는 나를 위해서, 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Q) 여행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가?
NERF: 칠레, 콜롬비아, 페루, 스위스, 프랑스 등 여기저기 다녀봤다. 내가 갈 수 있고 경제적으로 허락이 되면 언제든지 달려갔다. 아르헨티나 대표로 방문하기도 했는데, 한번은 콜롬비아로 여행을 갔다. 그쪽에서는 아르헨티나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마중 나온 사람을 앞에 두고도 공항에서 삼십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내가 전화를 걸어 "나는 동양인이다"라고 말하자 무척이나 놀라워하며 웃었다. 그렇다. 내가 남미 어느 국가에건 나타나면 모두 "동양인이 아르헨티나 말을 하는군!"이라 말하면서 웃어 죽는다.
Q)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가?
NERF: 그렇다. 예술계는 아주 방대하지만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형제애가 그 안에 흐른다.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 우리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어디든지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있으면 간다. 물론 모든 곳에서는 아니다. 한국이 그 예다. 그러나 다른 국가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연결되어 "나 아르헨티나로 간다"고 말하면 나는 "그래, 집으로 와"라고 대답한다. 내가 외국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처음 여행에서는 파리에서 친구 집에 한 달 동안 공짜로 머물렀다. 그래피티 아트에는 언제나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개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여행을 다닌다. 숙박비 정도는 언제나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는 한 여행을 다녔다.
Q) 그래피티 아트 를 정의한다면?
NERF: 많은 정의가 있을 수 있다. 이미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나에게 그래피티 아트란 자유다. 100%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흠, 어쩌면 100%의 자유란 있을 수 없겠다. 그러나 내 인생에 한 그 어떤 일보다 절대적인 자유에 최대한 가깝게 이끌어주는 것이 그래피티 아트다. 내가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도구로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 따위는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내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피드백도 공유한다. 물론 사람들에 달려있다. 커피와 메디아 루나를 산더미처럼 가져와 대접해주는 아줌마들도 있었지만 경찰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번은 후닌의 고급 동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실내화를 신은 한 신사가 다가왔고,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신사는 "끝나는데 오래 걸리는가?"라고 물었고 우리는 "30분이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우리는 곧 경찰을 부를 것이라 생각해 서둘러 작업을 끝냈다. 그런데 그 노신사는 30분 후에 맥주 3병을 들고 찾아왔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함께 작품을 감상했다. 항상은 아니지만 그런 일도 일어난다. 나 같은 경우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꼬르도바에서 3일 동안 철창신세를 진적도 있다. 물론 나 혼자는 아니고 네 명이 함께였는데, 다 괜찮았다. 그러나 벽화를 그리는 것이 "재산파괴"로 분류된다니! 그림을 그리는 것은 파괴의 작업이 아니다. 아무튼 우리에게도 나쁜 날들이 있다. 지금은 그냥 지나간 에피소드일 뿐이다. 매번 친구들과 다양한 모험을 하고 있고, 그것은 마치 벽에 걸린 사진들과 비슷하다. 함께한 모든 친구들을 기억하게 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Q) 한인사회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NERF: 지금 내가 거의 40세가 되어가기 때문에 뭔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20대의 청년들은 내가 그 나이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마음을 열고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 이상의 것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찾아 헤매고 이미 손안에 쥐어져 있는 것에 만족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유행어는 "편안한 데서 벗어나 실험을 하라"는 것이다. 계속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걸 느꼈다. 실수를 저지르거나 실패하는데 너무 두려움을 가진 나머지 나중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더라. 예를 들어 난 영어를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조금 배우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배운 것이 다였다. 그러나 여행할 때, 할 수 있는 한 영어로 말한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프랑스어로 말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두려워서 혹은 창피해서 영어를 못 하더라. 어리석은 일이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배우지도 못 한다. 모르는 것도 누군가 실수를 정정해주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기주의는 아무데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이 바로 이기주의 때문에 이렇게 됐다. 물론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도 좋지만 인생의 최고 목표가 물질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조언할 자격이 스스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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