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성자 정보
- CAEMCA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457 조회
- 목록
본문
조병찬-루이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서 멀리 이사를 가게 됐다. 연방경찰 내에서의 직무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지방 꼬르도바를 잠깐 거쳐서 현재 산후안 지방에 거주한다. 큰 사건의 수사를 마친 후 쉬고 힘을 충전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시를 찾은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에서 총격전과 가장 힘든 몇몇 경찰서에서 겪은 직무를 포함하는 22년 경력의 경찰 직을 회상한다.
- 의무병역을 마친 후 왜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는가?
- 부모님께서 경찰학교에 입학하라고 권하셨기 때문이다. 한국인 교포자녀대상 경찰학교입학모집이 있었고, 가서 알아보고 시험을 치르고 입학생 250명 중에 들었는데, 매년 약 2천명의 사람들이 지원한다. 한인교포자녀 중에서는 우리는 3명이었고, 현재 나만 혼자 남았다. 1975년생은 의무병역을 해야 하는 마지막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군대에 갔었고 1년 2개월 간의 병역을 마쳤다.
- 가족들 중에는 경찰이었던 사람이 없었는데, 어떻게 경찰이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는가?
- 아버지가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셨다. 게다가 한인교민회의 큰 후원이 있었다. 어쨌든 사람은 경찰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며 자신의 직업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적성은 학교에서, 학업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경찰에서 배우는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그렇게 경찰 일을 좋아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첫 날은 허리에 무기를 달고 불편하기 때문에 뭘 할지를 모른다. 총은 이제 내 일부가 됐으며 없으면 좀 이상할 정도이다. 결국에는 학교에서 그렇게 고생한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부 다 좋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길에서 경찰로 일하는 것은 힘들고, 갑자기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보는 것들이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내 일은 보통 사람과 비교해서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살인사건이 있으면 처음에는 끔찍하지만 적응이 될 때까지만 그렇다.
- 경찰학교에 다니는 동안, 따돌림이나 차별을 당한 적이 있는가?
- 그렇다, 처음에는 모든 게 다 이상했다. 3년 동안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아닌 목적을 향하면 매일매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 경찰학교 3년을 마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느 경찰서에서 일했는가?
- 제일 힘든 경찰서들에서 일했다. 제일 처음 일한 곳은 온세에 있는 제7경찰서였고, 뿌에이레돈 대로 노점상들의 퇴거문제를 맡았고 거기에서 나는 수사과에 있었다. 이후에는 플로레스의 제38경찰서에서 일했고, 행길보안직에 있었기에 총격전에 있기도 했었는데 부상 없이 끝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센떼나리오공원 제11경찰서에 있었다. 그런 곳들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의 장점은 경찰으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인데, 항상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들어가면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유치장에 45명까지 있어 보았는데 절도나 성범죄와 같은 모두가 힘든 사건들이었다.
- 총격전들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 총격전들 중의 하나는 민간인 복장으로 있었을 때 절도로 인해 일어났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리바다비아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었는데, 우리는 도둑 2명을 체포하려고 했었고 도둑들은 총을 쏘기 시작했다. 한 명을 잡을 수 있었고 무기를 압수했는데 경찰이였고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 제11경찰서에서 일한 후에 꼬르도바 주 리오 꾸아르또로 갔다. 왜 그랬나?
- 두 번의 총격전을 겪은 후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발령을 요청했다. 리오 꾸아르또에서는 즉각 업무부에 들어갔고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좀 안정되게 일하고 싶었는데 하루종일 길에서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바라던 바와는 달랐다. 거기에서 4년 있었고 후에 같은 사유로 발령을 요청했다. 산 후안으로 발령이 났고 거기에서 근무한 지 9년째이다. 현재 경찰서의 세 번째의 직위인 경감이고, 마약관련 연방특수범죄수사 전담을 맡고 있다.
- 지방의 범죄활동과 관련하여 리오 꾸아르또나 부에노스아이레스보다 더 조용한가?
- 많이 조용하다. 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 밀수에 관해 현재 아주 큰 공격을 하고 있는 문제로 인해 갈수록 더 늘어나는 추세이고, 이는 전에 같았으면 마약을 하는 사람을 저지하고 체포했었지만 마약을 파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었다. 오늘날 정책은 밀수를 하는 사람을 더 공격하고 우리는 큰 부분에 더 집중한다. 12월에 산 후안에서는 아주 거대한 수사로 끝을 맺었는데 이 수사는 “돼지케잌수사”라고 불렸는데 큰 조직이었고 마리화나 60킬로를 압수했으며 산 후안 신문에 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난 업무를 그래도 잘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열정의 문제다. 일에 열정을 바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 연방경찰 내의 부정부패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나는 항상 부정부패의 문제를 피해 왔다. 이를 수락하거나 그렇지 않는 것은 경찰에 달려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정부패한 상사나 다른 경찰들이 있는지 생각하기도 싫은데, 체포되어 있다면 그건 증거가 있거나 그렇게 했기 때문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실질적으로 내 경우에 길에서 일하거나 수사를 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잠을 편안하게 자고 나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 이번 해에 산 후안에서는 경찰학교 지망생 두 명이 운동을 한 후에 중태에 빠져 입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학교에서 그렇게 고생하는 것이 현명치 못한 처사가 아닌가?
- 나는 거기에서 적성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지 과하면 나쁘다. 하지만 청년들이 갈수록 더 약해져서 온다고 본다. 달리기를 한 번하고 벌써 토한다. 이는 경찰이 올바르게 교육받고 있지 않는 훈련과정의 일부이다. 나는 오늘날 하고 있는 것에 완전히 반대로 생각한다. 공부를 하게 하고 있지만 코드를 유지하지 않는다. 내가 공부할 시절에는 많았는데 말이다. 요즈음에는 그 압력을 잃어버려서 좋지 않은데, 당신이 배우는 시기에 고생하게 되면, 아무나 와서 당신을 모욕하게 되어도 당신은 갑자기 죽인다고 협박하면서 난폭적인 공격을 하게 되지 않는다. 한 번 난폭하게 취급 받은 경찰은 상황을 조용하게 떠맡는다. 하지만 오늘날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마지막으로, 교포 한인청년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가?
- 나는 마약의 상황이 걱정된다. 왜냐하면 모든 경제수준과 연령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통제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약이 공격을 하게 되면 힘들게 되니까 나는 마약을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이로운 것은 공부하는 것과 아르헨티나사회에 합류되도록 힘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젊었을 때에는 모두 따로 나뉘어진 사회였고, 완전히 패쇄된 관계였는데 이는 언어와 인종차별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이 계속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혼합되고 사회에 개방되어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