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기업가 최도선 피보디(PEABODY)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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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아상인연합회는 다방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며 성공한 한인 기업가들을 회보를 통해 만나보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로 한인 1.5세 기업가 최도선 피보디(PEABODY) CEO 에게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며 지금의 기업을 일궈내게 되었는지, 또한 사업에 도전하고 싶은 한인 젊은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지 들어보겠습니다.
1. 피보디라는 기업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19세였던 1983년 당시 대우 지사에서 일하게 된 것이 그 시초입니다. 대학 시작 전 2달 동안의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위해 입사했었던 것이 15년이나 이어지게 됐습니다. 오랜 기간의 직장생활 끝에 제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나왔지만 2001년의 불경기 때문에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경제 위기 끝에 평가 절하가 왔고 그 와중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재고가 잔뜩 쌓였지만 팔지 못하는 바람에 18개월간 이익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도에 다시 가전제품 업계에서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후 10년 이상 회사를 키워왔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회사를 일으키는 데는 2001년도의 경제위기가 축복이었고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피보디 기업이 아르헨티나에 수십 년 전 진출했으나 뻬론 정권시절 대규모 냉장고 생산 시설을 남기고 아르헨티나에서 철수했습니다. 2004년 8월에 저는 명목만 간신히 유지하던 피보디 기업 인수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피보디 기업은 성장을 거듭해 인수 당시 3명이던 종업원은 100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수도권 훌링감(Hurlingham) 지역에 공장이 위치해 있으며 50여종의 가전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고 있습니다.
2. 가족사항, 이민 연도, 학창시절을 짧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12살 되던 1977년 온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민 왔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우리가 이민 갈 나라라면서 신문에 났던 아르헨티나 기사를 보여주셨던 일이 기억납니다. 전 처음에 아르헨티나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은 얻지 못했는데, 그 기사는 군사 구테타로 뻬론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파라과이를 통해 아르헨티나에 정착하게 된 우리 가족은 불법 이민자 신분이라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영주권이 없어 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었죠.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습니다. 가난해서 힘들 기도 했지만, 스페인어를 할 줄도 모르는데다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소외되게 만들었습니다. 알폰신 대통령이 취임하던 1983년 우리 가족은 드디어 정식 영주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3. 사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와 도전 과정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목표와 방향성으로 사업을 일궈내었습니까?
아까 말했다시피 저는 다국적 기업 대우에서 15년 근무한 덕분에 업계와 항상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고 제가 설립한 기업도 가전제품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피보디라는 기업을 인수하기 전에는 인지도 있는 브랜드가 없어 어려움이 더 컸습니다. 2001년 경제 위기가 지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다시 성장을 시작했고 2008년도에는 경제 위기 이전의 소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피보디가 가전제품 노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면서 바닥부터 시작하고 성장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여타 가전제품 업체들이 이미 수십 년간의 사업을 해온 분야에 새롭게 뛰어들어 경쟁을 해야 됐으니까요. 여러 가지 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대우 시절 쌓아놓은 한국과 중국의 인맥과 경험이 도움이 됐습니다.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고 쉽게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는 것이 제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4. 동양인, 한국인으로서 아르헨티나 현지 기업들과 상대하며 느낀 점이 있으십니까? 많은 종업원을 거느리고 계시는데 한인 대표로서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어렸을 때는 동양인 이민이 처음 시작 됐던 무렵이라 인종차별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동양인을 보고 대하는데 익숙하지 않았고 동양문화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성인이 됐고, 기업가로서 자립도 했고, 아르헨티나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한인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현지 기업과 함께 일할 때는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를 확실히 느낄 수 있죠. 끄리스띠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함께 아르헨티나 기업인 해외 경제 사절단의 일원으로 베이징이나 자카르타 등의 도시를 방문한 적도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한인 기업인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종업원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갈등이 생겨도 제 타고난 성격 때문이지 한인 사장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가전제품 업계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한 가족으로 대해주는 것에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5.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생산 모델을 더 발전시키고 국내 가전제품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 훌링감에(Hurlingham) 위치해 있는 공장을 에세이사(Ezeiza) 공업단지로 확장 이전하는 등의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6. 새 정권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 환경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하십니까?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되었던 기존의 폐쇄적인 자세에서 이제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찾고 발전을 모색할 때라고 봅니다. 지난 12년간 재정적자, 외환보유고 감소 등의 거시 경제 문제 이외에도, 미시 경제적으로는 경쟁력 강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 모든 기업인들에게는 살아남기위한 숙제이며 도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이나 다국적 기업과 대등한 경쟁력을 갖췄던 시기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한인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입니까?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인생의 목표를 오직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것에 두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의 경우에는 안정적이며,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에 목표가 있었죠. 피보디 종업원들에게도 소비자는 자산을 취득하기 위해 일정가격을 지불하는데, 우리는 이때 이익을 남기는 재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항상 강조합니다.
우리는 가치를 창출하고 필요한 자치가 무엇인지 미리 예측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부를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를 이루려는데 목표를 둔 끝에, 성장해나가는 기업을 운영하게 됐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젊은 시절 제 고민이기도 했던 "인생의 목표를 발견하고 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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